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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9)

꿈심는농부 2018. 9. 29. 08:18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9)
입력 : 2011년 02월 08일 (화) 12:34:02 / 최종편집 : 2011년 02월 08일 (화) 12:43:23 [조회수 : 96]김기천abqkee@gmail.com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9)"


4.2.5. 영지주의와 인도종교의 일치

  
▲ 김기천 목사
낙하마디 문헌에 권위자인 페이젤스(Elaine Pagels)는 기독교의 가르침과는 분명하게 차이가 나는 영지주의 문헌들의 특징을 아래와 같이 세 가지로 언급했다[Elaine Pagels, The Gnostic Gospels, (New York: Vintage Books, 1989), xx.]. 그러면서 그 특징들이 힌두사상이나 불교전승과 연관을 갖고 있지 않는가에 의문을 던졌다.

첫째, 정통 유대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은 인간과 창조주 하나님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다른 존재이다. 그러나 낙하마디에서 발견된 영지주의 복음서 기자들은 다르게 가르친다. 자신을 아는 지식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며 자아와 하나님이 동일시된다.

둘째, 이들 영지주의 복음서들에 기록되어 있는 “살아있는 예수”는 신약성서의 예수처럼 죄나 회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허상(虛像)이나 깨달음에 대해서 말한다. 그 예수는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영적 깨달음에 도달하도록 인도하는 안내자로서 온다. 제자가 깨달음을 얻게 되면 예수는 더 이상 영적 스승이 아니다. 둘이 동일해지진다.

셋째, 정통 기독교인들은 예수는 주님이며 특히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예수는 그가 구원해낸 인간들과도 영원히 다른 존재로 남아 있다. 그러나 영지주의 복음서인 『도마복음』의 35:4-7절과 50:28-30절을 보면, 도마가 예수를 깨닫자마자 예수는 도마에게 둘 다 같은 근원에서 온 것을 받았다고 말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너의 선생이 아니다. 왜냐하면 너는 취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누어준 거품이 이는 샘물을 마시고 취해버렸다. ....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을 마시는 자는 나와 같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은 그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감추어진 것들이 그에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미 앞에서 낙하마디 영지주의 문헌들과 인도종교들의 연관성을 논했다. 일반적으로 브라만교에서 절대 실체라는 브라만이나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은 자란 부처나 모두 신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이 신적인 존재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과 본질적으로 다른 전적 타자가 아니다. 인간이 브라만이 될 수 있고 부처가 될 수 있다. 인도종교는 신과 인간을 동일시하고 있다. 낙하마디 영지주의 문헌들이 신과 인간을 동일시하는 기원은 인도종교에 있다.

브라만교는 이 세상을 환영(Maya, 幻影)이라고 가르친다. 브라만만이 실체인 것이다. 이 브라만에 대한 인간의 무지가 모든 고통에 원인이다. 무지에서 벗어나려면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 참 자유인 해탈을 얻을 수 있다. 불교 역시 모든 고통의 원인은 이 세상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과 엮어진 모든 집착을 멸하고 참된 깨달음을 얻어야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낙하마디 영지주의 문헌들이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죄를 언급하지 않고 환영이나 깨달음을 가르치는 뿌리는 인도종교에 있다.

브라만교, 불교, 자이나교 등의 인도종교에서는 누구나 깨달음을 얻고 신적 존재가 될 수 있다.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신이 하나가 아니다. 깨달음을 얻은 자는 모두 신적 존재가 된다. 브라만교에서 살아서 해탈한 사람은 누구나 “지반묵티”(Jivanmukti)가 된다. 신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불교의 창시자 “싯다르타 고타마”(Siddhartha Gautama)는 깨달음을 얻고(覺者) 열반에 이른 부처(Buddha)가 되고(成佛) 나서 여전히 세상에 남아서 제자들에게 부처가 되는 길을 가르쳤다(大覺). 부처의 가르침을 따라 깨닫게 된 자는 부처와 똑같은 신적 존재 즉 부처(Buddha)가 된다(成佛). 자이나교의 창시자 “바르다마나 마하비라”(Vardhamana Mahavira)는 본인이 해탈하여 지나(Jina)가 된 이후에 계속 제자들을 이끌며 그들도 해탈에 도달하도록 인도하였다. 마하비라의 가르침을 따라 해탈에 도달한 사람은 마하비라와 똑같은 신적존재 지나(Jina)가 된다. 『도마복음』에서 도마가 깨닫고 난 후에 예수는 도마에게 더 이상 선생이 아니라고 한다. 예수나 도마가 같은 신적존재가 되었다고 말한다. 기독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이런 가르침은 힌두사상에서 온 것이다.

  
▲ 1945년 이집트 니그함마디에서 발견된 도마복음


5. 절대로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

5.1. 첫째 이유: 복음과 독약이 혼합된 『도마복음』

앞에서 살펴 본대로 영지주의 문헌들의 많은 부분들이 인도 종교들 즉 브라만교, 불교, 자이나교 등의 사상들을 담고 있다. 영지주의 문헌들은 여러 종교들의 사상이 혼합되어 생겨난 자료들이다. 낙하마디 항아리 안에서 발견된 문헌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겉으로 볼 때는 기독교의 용어나 개념들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문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작 내용을 깊이 들어가면 기독교의 껍질을 뒤집어 쓴 타종교 사상들이다. 같은 항아리에 들어 있던 『도마복음』 역시 예외가 아니다.

기독교가 태동하면서 외부적으로는 정치적 물리적 박해가 일어나면서 기독교는 힘겨운 성장을 해왔다. 그런 와중에 내부적으로는 영지주의와 같이 복음을 왜곡시키는 종교 혼합주의 사상들이 침투하고 있었다. 교회 지도자들은 그런 혼합주의 사상들이 기독교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구경만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 사상들의 위험성을 직감하고 당시 신실한 교회 지도자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주의하라고 가르쳤다.

시리아에 있는 안디옥의 교회 감독 이그나시우스(Ignatius)는 영지주의자들을 대적한 사람이었다. 그는 주후 110년경에 기독교 신앙 때문에 붙잡혀 로마로 끌려가면서 도중에 그가 거쳐 가는 지역 교회 교인들에게 많은 편지를 썼다. 그 편지를 통하여 지역 기독교인들에게 감독들을 의지하고 그리스도의 참 인성을 믿으라고 강조했다. 특히, 소아시아 트랄레스(Tralles)에 사는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Letter to the Trallians) 제 6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Obsecro itaque vos, non ego, sed charitas Jesu Christi, solo Christiano alimento uti, ab aliena autem herba abstinere, quae est haeresis. Isti etiam venenis sus Jesum Christum miscent, loquentes, quae fide sunt indigna; similes iis, qui mortiterum pharmacum cum vino mulso dant, quod qui ignorat, libenter, in voluptate noxia mortem accipit. (IGNATIOU EPISTOLAI, Patrologiae, 1894, 679) 그러므로 여러분들께 탄원합니다.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기독교 양식만을 사용하고 다른 종류의 독초들은 끊으라고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독초란 이단의 가르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독약과 혼합시켜서 믿을 가치가 없는 것들을 가르칩니다. 그들은 마치 독약을 달콤한 포도주에 타놓는 사람들과 같아서 모르는 사람이 그것을 마시면서 파멸의 쾌락을 느끼고 죽음으로 빠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에도 기독교의 용어나 개념을 그대로 쓰면서 다른 가르침을 가르치는 이단들이 있다. 겉으로 볼 때는 기독교 형식을 갖추었는데 내용은 다른 종교 사상을 접목시켰다든지 아니면 그 이단 교주의 가르침을 전개하는 별난 이단들이 많이 있다. 심지어는 전통적으로 내려왔던 성서 이외에 다른 책을 들이대면서 그것도 성서라고 가르치는 이단도 있다. 정통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헛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문제는 지금부터 약 1600년 전에 이단들이 사용했던 영지주의 문헌들 특히 『도마복음』을 들이대면서 신약 정경 안에 들어와야 된다고 헛소리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도마복음』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귀가 솔깃할 수도 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미 『도마복음』과 같이 타종교 사상을 혼합시킨 영지주의 문헌들은 기독교인들을 파멸로 인도하는 독약과 같다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목숨 건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5.2. 둘째 이유: 초대교회 교부들도 인용 안한 『도마복음』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의 제자들인 사도들이 다스렸다. 예루살렘 교회가 성장하면서 사도들은 자신들을 도울 집사들을 세웠다. 외부로부터 박해가 심해지자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은 흩어지게 되었고, 교인들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생겨났다. 여러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을 그 지역 사람들인 장로, 집사가 다스렸다. 사도들이 생존했던 1세기에 장로나 집사들은 사도들의 지도를 받았다.

2세기로 접어들면서 교회는 더욱 성장하여 여러 지역에서 세워졌으며 교회의 숫자도 더 불어났다. 여러 교회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목적으로 감독, 장로, 집사 등 분명하게 구분된 교회 직분이 생겨났다. 각 교회는 이런 직분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다스려졌다. 2세기 말쯤에 오늘날 “교구”처럼 한 지방 안에 있는 여러 교회들을 다스리는 감독들이 세워졌다. 이미 사도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대신 감독들이 사도들의 권위를 이어받은 사람들로 인정받았다.

3세기 중엽에 이르면서 지역 안에 있는 개체 교회 장로는 오늘날에 목회자로 인정받았다. 많은 개체 교회들이 들어 있는 지역 즉 교구를 다스리는 감독들 가운데 로마의 감독은 최고의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4세기 초엽에 큰 도시 감독들이 인근 지방 감독들 지배하기 시작했다. 313년에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을 발표하면서 기독교는 박해받는 종교에서 보호받는 종교로 격상되었다. 이후 325년에는 콘스탄티누스 1세가 기독교 역사상 최초라고 할 수 있는 니케아 종교회의(Council of Nicaea)를 소집해서 기독교 교리를 통일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4세기 말엽에는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감독들에게 특별한 명예가 주어지면서, 이들은 주교(Patriarch)들이 되었다. 서열로 따지면 로마 감독이 최고였고 다음으로 콘스탄티노플 감독이었다.

4세기 중엽에 만들어졌다는 낙하마디 문헌을 이해하기 위해서 위와 같은 간략한 교회역사를 언급했다. 낙하마디 문헌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300년 동안 기독교 안에는 교회 안에서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교사들, 신학자들, 감독들이 있었다. 이들을 “교부들”(Church Fathers)이라고 부른다.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30-100)같은 경우는 1세기에 살았던 교부이다. 교부들은 교회를 지도하고 교인들을 가르치기 위해 글을 썼다. 또한 기독교에 대한 외부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 기독교를 변증하는 글도 썼다. 이런 글들을 쓰면서 교부들은 성서 본문을 인용했다. 현존하는 교부들의 글을 보면 이 교부들이 인용한 성서본문들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서본문과 다르지 않다. 이런 교부들의 인용구절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신약 경전들을 교부들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이 당시 교부들이 쓴 글들은 신약 경전과 함께 교회 내에서 널리 읽혀졌다. 그렇다고 그 글들을 신약 경전에 넣는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미 1세기 말엽까지 신약 경전들은 거의 확정되어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세기에 살았던 교부, 로마의 클레멘트가 썼다고 하는 「고린도교회에게 보낸 편지」는 신약본문 외에 가장 오래된 기독교 문헌이다. 그러나 누구도 1세기 문헌인 이 클레멘트의 글을 신약 경전 안에 넣어야 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4세기에 항아리에서 발견된 『도마복음』을 신약경전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다음 질문에 답을 좀 해보라. 기독교가 시작되던 1세기부터 낙하마디 항아리가 발견되던 4세기까지 300여 년 동안 어느 교부들의 글이라도 『도마복음』 안에 있는 이상한 본문들을 인용한 자료들이 있으면 제시해보라. 어느 교부들도 『도마복음』 본문들을 인용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다음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도마복음』은 3세기나 4세기 중엽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문헌이다. 만일 존재했었던 문헌이라면, 교부들이나 기독교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기독교 밖에 문헌임에 틀림없다.
(발췌: 큐복음 상권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 334-341페이지)

목차(상기 내용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서 목차를 추가한다)
VIII. 부록: 인도종교와 혼합된 『도마복음』
1. 항아리에서 쏟아진 영지주의 문헌들
1.1. 『도마복음』이 들어있던 항아리
1.2. 침묵하는 항아리
2. 그리스 로마 세계에 포함된 인도
2.1. 낙하마디 문헌들의 뿌리를 찾아서
2.2. 기원전 6세기 이후 인도와 문화 교류
2.3. 그리스 로마 문헌에 기록된 힌두 종교
2.4. 인도 북부 개혁 불교
2.5. 해외로 전파되는 인도 불교
3. 인도종교 이해
3.1. 힌두 경전 『리그베다』
3.2. 힌두 경전 『우파니샤드』
3.3. 기원전 6세기 힌두 개혁종교: 자이나교, 불교
3.3.1. 자이나교
3.3.2. 불교
3.4. 정통 내에 개혁바람: 힌두 육파철학
3.4.1. 상키야(Samkhya) 학파
3.4.2. 요가(Yoga) 학파
3.4.3. 베단타(Vedanta) 학파
3.4.4. 미맘사(Mimamsa) 학파
3.4.5. 바이세쉬카(Vaisesika) 학파
3.4.6. 니야야(Nyaya) 학파
4. 인도종교와 기독교의 혼합
4.1. 영지주의의 본산 이집트
4.2. 영지주의 문헌 안에 힌두사상: 브라만교, 불교, 자이나교
4.2.1. 영지와 깨달음
4.2.2. 영지주의와 힌두종교의 신관 4.2.3. 영지주의와 힌두종교의 세계관
4.2.3. 영지주의 기도와 힌두종교 만트라
4.2.4. 영지주의와 인도종교의 일치
5. 절대로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
5.1. 첫째 이유: 복음과 독약이 혼합된 『도마복음』
5.2. 둘째 이유: 초대교회 교부들도 인용 안한 『도마복음』
5.3. 셋째 이유: 현존하는 2만5천여 개의 성서사본들의 증거
6.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