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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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도종교와 기독교의 혼합
4.1. 영지주의의 본산 이집트 낙하마디 영지주의 문헌들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의 본거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기독교 영지주의자로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바실리데스(Basilides)와 발렌티누스(Valentinus, 주후 100-160)를 들 수 있다. 바실리데스는 주후 117-138년경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가르쳤던 기독교 영지주의 교사였다. 발렌티누스 역시 나일 강 유역에서 태어나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교육을 받았다. 발렌티누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가르치다가 주후 136년경에 로마로 갔다. 이집트 낙하마디에서 발견된 『진리의 복음』(Gospel of Truth)은 발렌티누스의 추종자들 즉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복음서와 동일한 것이다. 초대교부 이레내우스(Irenaeus, 주후 2세기-202)는 발렌티누스 추종자들이 『진리의 복음』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도마복음』을 시기를 논할 때 여지없이 제시되는 자료가 파피루스 옥시린쿠스(Papyrus Oxyrhynchus)이다. 파피루스 “옥시린쿠스 1”(Papyrus Oxyrhynchus 1)은 2세기 말이나 3세기 초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옥시린쿠스(Oxyrhynchus)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약 300km 남쪽으로 떨어진 나일 강 상류에 있는 도시이다. 이 도시는 그리스 로마 시대에 상당히 번성했었고 또한 많은 교회와 수도원들이 이곳에 세워졌었다. 이곳에서 많은 기독교 문헌들[마태복음 1, 11-12, 19장; 마가복음 10-11장; 요한복음 1, 20장; 히브리 복음서(Hebrew Gospel); 헤르메스 목자서(The Shepherd of Hermas); 이외 에도 수많은 교부들의 글, 찬송가, 기도서 등이 발견되었다.]이 발견되었다. 『도마복음』을 지지해주는 자료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데 옥시린쿠스에서 『도마복음』조각들 즉 단편들도 발견되었다. 기독교 영지주의자 바실리데스나 발렌티누스의 지역 배경도 이집트 나일 강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이고 기독교 영지주의 문헌들이 들어 있는 항아리가 발견된 곳도 이집트 나일 강 상류에 위치한 낙하마디 마을이었다. 도대체 이집트 나일 강 유역에 위치한 도시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르침과 상이한 영지주의 가르침들이 왜 이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되었는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을 터툴리안(Tertullian, 주후 160-220)의 글에서 찾아본다. 터툴리안은 주후 160년경에 아프리카 카르타고(Carthage)에서 로마 백부장의 아들로 태어나서 “라틴 기독교의 아버지”라고 알려진 인물이다. 카르타고는 이집트에서도 서쪽으로 뱃길로 약 1,2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그런데 이곳까지 인도 종교인들이 들어와 있었다. 다음은 터툴리안이 기독교인을 변증하기 위해 썼던 글에 나오는 문장이다. 원문과 함께 직접 번역한 것을 소개한다. 주후 200년경에 아프리카 카르타고에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문장이다. 이 당시 북아프리카 서쪽까지 인도종교 승려들이 들어와 있다는 증거이다. 기독교가 형성되던 그 즈음에 이미 인도 전통 종교인 브라만교 승려들은 아프리카 서쪽까지 진출해 있었다. 본문에서 “브라만 승려들”(Brachmanae)은 『베다』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힌두 정통 종교를 믿는 종교인들을 가리킨다. 본문에 “벗고 사는 인도의 지혜교사들”(Indorum gymnosophistae)은 인도의 개혁종교인 불교나 자이나교의 승려들이라고 볼 수 있다. 깨달음 위해 세속적인 것들을 끊어버리는 이 승려들은 거의 벗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음 구절인 “숲속에서 살거나 방랑하는 삶을 사는”(silvicolae et exules vitae)은 앞에 언급한 인도사람들을 수식하는 형용사구로서 마을을 떠나 나무가 우거진 숲속에 들어가서 살거나 또는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포교활동을 했던 인도 종교인들의 생활상을 가리킨다. 이미 주후 2세기에 아프리카에 서쪽 카르타고까지 가 있던 이 인도 종교인들은 당연히 아프리카 동부에 있는 이집트를 지나쳐 왔을 것이다. 그러면 이집트에도 인도 종교인들이 있었는가? 4세기 중엽에 만들어졌다는 낙하마디 문헌보다 거의 150년 앞선 시대에 살았던 터툴리안은 나일 강에 사는 인도 종교인들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 북서 지방을 점령하고 그곳에 희랍어를 말하는 그리스 사람들을 거주시켰다. 그 지역에서 인도의 대승불교가 그리스 문화와 혼합되는 간다라 불교 예술이 발전되었다. 이 당시 인도 지역에서는 희랍어를 말할 줄 아는 그리스 사람을 팔리어[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경들은 팔리어(Pali)로 기록되어 있다. 팔리어는 중기 인도 아리안(Middle Indo-Aryan) 언어로서 대화체 언어라기보다는 문어체 언어이다.]로 “요나”(Yona)[아마도 고대 희랍인들인 이오니아 사람(Ionian)을 소리 나는 대로 부른 것 같다.]라고 불렀다. 기원전 2세기경에 오늘날 파키스탄 지역에 해당하는 인도 그리스 왕국을 통치했던 왕 메난더(Menander)가 웅장한 불교 석탑(Maha Thupa)을 건립하는 예식을 했다. 이 예식을 참석하기 위해서 3만 명의 승려를 이끌고 알렉산드리아(Alasandra)[알렉산더 대왕이 인도 북부를 정복하고 세운 도시 Alexandria of the Caucasus로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카불 근처로 추정된다.]에서 찾아 온 불교 지도자가 “마하달마라키타”(Mahadharmmarakkhita)라는 “요나” 곧 그리스 사람이었다. 그리스 사람이 불교계의 큰 지도자가 될 정도라면 그 지역에 수많은 그리스 사람들이 불교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또한 포교활동을 장려하는 대승불교의 영향으로 그리스 불교 승려들은 아마도 희랍어가 통용되는 그리스 로마 제국으로 포교하러 갔었을 것이다. 특히 이들은 인도 지역과 날씨와 환경이 유사하면서도 문화의 중심지였던 이집트 나일 강 유역에 기거하면서 포교활동을 했을 것이다. 다음은 주후 2세기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클레멘트(Clement, 150-215)의 글 『스트로마타』(Stromata)[“스트로마타”(Stromata)는 ‘여러 철학적인 정보 수집본’이다. 글의 목적은 영지주의를 반대하면서 제자들을 더 높은 지식으로 인도하는 데 있다. 본래 8권으로 되어 있는데 여덟 번째 책은 소실되었다.] 1권 15장에 나오는 글이다. 클레멘트는 이 책에서 그리스로 들어온 여러 나라의 종교인들과 철학자들을 나열하고 있다. 4.2.1. 영지와 깨달음 영지주의의 가르침은 기독교의 가르침과 분명하게 차이가 난다. 그렇다고 영지주의 가르침들이 모두 통일된 것도 아니다. 영지주의 가르침들도 서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일치되는 점들을 정리하면서 근원을 추적해보기로 한다. 영지주의(Gnosticism)란 이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영지’(靈智) 즉 ‘영적인 지혜’(智慧) 또는 ‘지식’(智識)에 해당하는 말이 “그노시스”(gnw'si")이다. 이 영적인 지식은 구원을 얻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 지식은 학습을 통해서 배우는 지식이 아니다. 깨달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비밀 지식이다. 본래 “그노시스”(gnw'si")에 관한 용어는 플라톤의 철학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플라톤은 그의 책 『폴리티코스』(POLITIKOS)에서 “그노스티코이”(gnwstikoi)란 용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비밀스럽고 신비한 지식이 아니다. 재능, 능력, 지성 등과 같은 사람의 적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르침을 이해하고 그 뜻을 파악하는 데에 필요한 지성을 말한다.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그노시스”는 구원에 필요한 지식이고 플라톤이 말하는 “그노시스”는 학습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영지주의가 강조하는 ‘영지’(靈智)는 그 근원이 그리스 로마 사상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힌두종교를 살펴보았다. 힌두종교의 근원은 『베다』경전이다. “베다”란 산스크리트어는 고차원적인 ‘지식, 앎’이란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그런데 이 지식은 학교에서 공부해서 배우는 그런 지식이 아니다. 오랫동안 피나는 수행을 통한 깨달음으로 얻게 되는 신비한 지식이다. 이 신비한 지식은 힌두종교의 최종 목표인 자유, 해탈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신비한 지식을 깨닫게 되면 결국 해탈에 도달한다. 영지주의자들은 해탈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기독교의 틀과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구원이란 말이 더 가깝다. 영지주의자들은 영적인 지식을 갖추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결국 힌두 사상의 흔적을 영지주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종교가 기존 종교에 침투하려면 기존 종교의 틀과 용어들로 바꾸어야 한다. 영지주의 틀과 용어는 기독교적이지만 내용 즉 사상은 힌두사상에서 온 것들이다. 힌두 정통 종교 브라만이나 불교 승려나 자이나교 승려와 같은 인도 종교인들은 주로 세속을 등지고 금욕 수행을 하는 생활을 한다. 세속을 등진 사람들에게 속세에서 일어나는 죄는 관심 밖이다. 깨달음을 위해서 정진하는 일만이 최고의 관심사이다. 그러니 인도 종교는 깨달음을 강조하기 때문에 기독교처럼 죄의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오직 깨달음을 통해 해탈하는 일만이 종교생활의 최상의 목적이다. 영지주의 문헌들도 인간의 죄를 다루지 않는다. 물론 『도마복음』도 예외는 아니다. 영지주의는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영적인 지혜 즉 비밀 지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도마복음』1장 1절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출처]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7) (안티와 예수의 대화) |작성자 주방보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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