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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지켜야만 했던 양심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꿈심는농부 2017. 2. 25. 10:34

(1)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불과 1년3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보통사람으로 살려던 사람이, 가족과 함께 검찰의 조사에 시달리다가 높은 바위벼랑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 사실을 두고, 지금 온 국민은 그저 경악할 뿐이다. 한동안 온 세상이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검찰의 처분을 앞둔 전직 대통령의 자살을 두고 지금의 국민들은 그저 할 말을 잊고 있을 뿐이지만, 그런 총망 중에서도 이 참혹한 사실이 외국인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직업 탓인지 모르지만 후세의 역사는 또 이 사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크게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의 처분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직 대통령을 추모하고 진혼하는 말을 찾기가 정말 어렵지만,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고 한 유언을 생각하면서 그의 5년 치세가 가진 역사성을 미리 말해보는 것도 추모와 진혼의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 60년을 넘어선 우리 공화주의시대를 담당했던 각 정권들에 대해 그 역사적 업적을 평가하는 기준을 생각해 보면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그 하나는 각 정권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민주주의를 얼마나 신장시켰는가 하는 점이며, 또 하나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민족으로서 각 정권들이 민족의 평화통일 문제에 얼마만큼의 진전을 이루었는가 하는 점이다.

참여정부이고자 했던 노무현 정부는 김영삼·김대중 정부에 이어서 국민의 정치적 권리를 신장시킨 점에서 큰 진전이 있었다. 그리고 ‘좌파정권’이란 평을 받으면서까지 경제적 민주주의를 이루고자 노력했으며, 사회적 평등을 확대하는 정책과 사상 및 문화면의 자유를 확대하는 일에도 인권변호사 출신 정치인으로서의 구실을 다하려 했다고 평가될 것이다.

타민족의 식민지배나 제민족의 군사독재를 겪은 민족사회는 반드시 그 불행했던 시기에 저질러진 부끄러운 과거사를 청산함으로써만 문화민족사회의 반열에 들게 마련이다. 군사독재정권의 독소를 제거하기에 바빴던 김영삼·김대중 정부가 미처 손대지 못했던 과거사청산사업을 노무현 정부가 시작함으로써 민주정권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한편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가 개척한 평화통일정책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임기 말기이긴 했지만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개성공단 이외에 몇 곳의 공단건설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분단민족사회의 경우 민주정권이면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평화통일정책면에서도 노무현 정부는 제 할 일을 다한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 공화주의시대 정권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 기준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민주주의 발전과 평화통일사업의 진전임을 후속 정권이 알게 되면, 제2차 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이 실천될 것이고 민주주의도 지금보다 훨씬 진전됨으로써 노무현 정권의 업적이 되살아나게 될 것이다.

무난한 역사적 평가를 받을 만한 업적을 남긴 대통령중심제 정권의 최고담당자가 자살한 사실을 두고 지금 사람들은 모두 할 말을 못 찾지만, 후세 역사의 정당한 평가를 기대함으로써 고인을 추모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민주주의 신봉자로서, 민족의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주의자로서, 검찰의 처분을 기다리게 된 전직 대통령으로서 귀중한 양심을 지키는 길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길밖에 없다는 처절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 현실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자신의 말처럼 “결코 굽히지 않고 살아 있는 양심”,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었던 그 양심을 죽음으로 지켜야만 했던 고인의 명복을 빌고 또 빈다. 유족에게도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강만길 역사학자·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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