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8)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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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8)"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신(神)도 전통 기독교에서 가르친 하나님과 다르다. 영지주의에서는 신을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첫째로, 영지주의자들은 신을 “모나드”(Monad)라고 부른다. “모나드”란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 즉 ‘단자’(單子) 또는 ‘원소’(元素)란 말이다. 피타고라스 학자들은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것으로 만물을 이루고 있는 근원을 “모나드”라고 가르쳤다. 학자들은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모나드가 단순히 피타고라스학파들의 가르침에서 왔다고 단정한다. 그런데 피타고라스학파에서 주장하는 단자론과 유사한 것을 인도 육파 철학 가운데 바이세쉬카(Vaisesika)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다. 바이세쉬카 학파의 카나다는 물질세계에 있는 모든 것들은 자꾸 나누다보면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일정한 수의 원소들(Paramanus)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세상은 물, 불, 흙, 공기 등 네 가지 요소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인도의 카나다는 물질세계는 다섯 개의 요소(Bhuta)들 즉 물(Apa), 불(Agni), 흙(Prithvi), 공기(Maya), 에테르(Akasha)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힌두 사상처럼 인간 영혼의 윤회사상을 믿으며, 인생의 최상의 단계는 순수하게 명상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며, 고기를 먹지 않는 생활을 했다. 여기서 논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힌두사상과 피타고라스학파 간의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본인은 영지주의자들이 신을 모나드 즉 단자라고 부른 것도 그 뿌리는 힌두종교에 있다고 본다. 영지주의자들은 기독교에서 시간을 나타내는 용어를 신이라고 부른다. 기독교 경전에서 “에온”(aijwvn)은 ‘영원’ 또는 ‘세대, 시기’ 등 시간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또한 “아르케”(hJ ajrchv)란 단어도 ‘시작, 태초’라는 시간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그런데 영지주의자들은 영원한 신적 존재들을 “에온”(aijwvn)이이라고 부른다. 예수도 하나의 에온이다. 최고의 절대적인 신은 ‘완전한 에온’이란 의미를 가진 희랍어로 “아이온 텔로스”(Aijwvn tevleo")라고 부른다. 그 뿐 아니라 이 절대적인 최고의 신을 “아르케”(hJ ajrchv)라고 부르기도 하고 ‘태초 이전’이란 의미의 “프로아르케”(Proarchv)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대체 기독교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런 가르침은 어디서 온 것인가? 우리는 이런 가르침을 힌두 경전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힌두 사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경전 『바가바드 기타』를 보면 최고의 절대 신인 크리슈나(Krishna)가 10장 30절에서 “나는 시간이다”, 32절에서 “나는 만물의 태초이다”, 33절에서 “나는 소멸되지 않는 시간이다”, 11장 32절에서 “나는 온 세상을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온 세상의 강한 파괴자인 시간이다” 라고 한다. 영지주의에서 시간을 신격화시킨 사상은 바로 힌두 사상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데미우르고스는 그의 모든 능력의 근원인 어머니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고 무지함 속에서 플레로마 세계와 닮은 물질세계를 창조했다. 그는 영적인 것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면서 물질세계인 만물을 창조한 것이다. 데미우르고스 안에 들어 있던 소피아의 능력이 물질세계에 갇혀있는 인간의 몸 안에 감추어졌다. 인간은 몸 안에 감추어진 이 소피아의 능력 즉 불꽃을 깨닫고 그 불꽃의 원초적인 근원인 영적인 실체들이 충만한 플레로마로 되돌아가야 한다. 데미우르고스가 무지함 가운데 만물을 창조할 때, 구원자 그리스도가 은밀하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데미우르고스조차 놀랄 정도로 창조된 우주는 거의 완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 불완전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데미우르고스는 후회했다. 그는 메시아를 보내서 이 불완전한 것을 고치려고 했다. 이런 사실을 알아차린 구속자 예수가 이 메시아와 결합해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온 것이다. 이 땅의 인간들은 물질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으로 나뉜다. 순전히 영적인 사람만이 데미우르고스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하게 되어 구속자 예수와 그의 부인 아카모스(Achamoth)와 결합해서 몸과 혼의 껍질을 벗고 플레로마로 들어간다. 영지주의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완전한 절대신(Monad) 또는 절대 에온(Aijwvn tevleo")이 있다고 가르친다. 이 절대신은 보이지도 않고, 영원하며, 태어나지도 않고, 헤아릴 수 없이 돌아가는 세월의 순환 속에서 심오한 침묵과 고요함 가운데 있다. 이 절대신이 있는 천상의 영역은 그 신의 모든 능력과 신의 영광 즉 빛으로 충만한 “플레로마”(Plhvrwma)이다. 이곳에는 신적 존재인 “소피아”(sofiva), “에온”(aijwvn)들, “아르콘”(a[rcwn)들이 있다. 이런 신적 존재들은 플레로마로부터 방출되어 나온 것들이다. 물론 창조의 신 “데미우르고스”(dhmiourgov") 역시 플레로마에서 나왔다. 영지주의 세계관에서 분명한 것은 신의 이중 개념이다. 이해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절대신이 있고,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무지하면서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 데미우르고스가 있다. 이런 구조는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에 근거한 기독교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구약에서 만물을 창조한 신을 데미우르고스라고 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열등한 신이란 말이다. 극단적으로 가면 창조주의 말씀이 기록된 구약은 별 볼 일없는 말씀이고 신약에서도 영에 관해서 많이 기록된 바울서신이나 중요하게 여긴다. 이렇게 기독교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영지주의 세계관을 힌두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힌두교 육파철학(六派哲學)에서 가장 오래된 상키야(Samkhya) 학파의 가르침을 보면 우주는 두 개의 실체 “푸루샤”(Purusa, 純粹情神)와 “프라크리티”(Prakriti, 物的本質)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푸루샤는 말로 형용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는, 절대 독립적인 존재이다. 푸루샤의 본질은 순수한 지식, 지혜, 생각이다. 지혜의 빛은 푸루샤로부터 방출된다. 프라크리티는 우주 만물을 만들어내는 최초의 원인이며 무의식과 무지의 원리이다. 이것은 “삿바”(Sattva)와 “라자스”(Rajas)와 “타마스”(Tamas) 등의 세 가지 특질로 구성되는데 이로부터 우주 만물이 만들어진다.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절대신이나 힌두종교에서 푸루샤가 유사하고 물질 세상을 창조한 무지의 신 데미우르고스나 힌두종교에 무지의 원리인 프라크리티가 비슷하다. 학자들은 “데미우르고스”란 이름은 기원전 360년경에 기록되었다는 플라톤의 『티메우스』(Timaeus)[이 책은 소크라테스, 티메우스, 헤르모크라테스(Hermocrates), 크리티아스(Critias)의 대화를 기록한 책으로 주로 티메우스의 독백을 내용으로 한다. 내용을 보면, 데미우르고스는 이전에는 혼돈과 무질서 했던 우주를 완전한 세계의 모양을 따라서 오늘날 같은 세상으로 창조해 놓았다.]에서 처음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영지주의자들이 플라톤 사상을 혼합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티메우스』에서 데미우르고스는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무지의 신, 무의식의 신이 아니다. 오히려 영지주의의 데미우르고스는 인간을 무지에 빠뜨려 물질 세상 속에 속박시켜 놓은 힌두종교의 프라크리티에 가깝다. 영주주의 가르침을 보면 인간 안에 지혜의 불꽃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 영적인 불꽃은 인간의 기원이 물질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천상의 세계인 플레로마에 있음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또한 이 불꽃은 인간이 물질계를 벗어나서 플레로마로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의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은 영적인 지혜를 깨달음(gnw'si")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 이렇게 깨달은 사람을 “프뉴마티코스”(pneumatikov")라고 부른다. 당연히 살아있는 동안 이런 영적인 깨달음을 얻은 프뉴마티코스가 될 수 있다. 힌두사상을 보면 인간에게는 영원하며 절대적인 순수정신 푸루샤로부터 온 지혜, 지식, 깨달음이 있다. 이 깨달음은 푸루샤와 프라크리티를 분별하는 지혜(分別智, Buddhi)이다. 이 분별지혜를 통해서 프라크리티가 만들어 놓은 무지나 환상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러면 순수정신 또는 순수지혜를 구속하고 있는 물질로 된 몸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은 목샤(Moksa) 즉 해탈할 수 있게 된다. 살아 있는 동안 해탈한 사람을 “지반묵티”(Jivanmukti)라고 하고 죽은 후에 해탈하는 사람을 “비데하묵티”(Videhamukti)라고 가르친다. 영지주의나 힌두사상이나 지혜를 강조하고 그 지혜를 통하여 인간을 속박하고 있다는 이 세상을 벗어나는 것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4.2.4. 영지주의 기도와 힌두종교 만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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