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리더십 특강 전문 (2004.5.27) - 노무현 대통령
연세대 리더십 특강 전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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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 연세대 리더십 특강 전문 여러분, 감사합니다. 존경하는 우리 총장님께서 제게 아주 호의적인 소개를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늘 여러분들 저는 참 반갑고, 또 이 자리가 매우 기쁩니다. 우선 여러분들의 초청을 받았다는 사실이 매우 영광스럽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오늘 특별히 기쁜 이유 중의 하나는 제가 자유롭지 않은 일을 오늘 할 수 있게 된 것이 매우 기쁩니다. 대통령이 되면 대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자유롭지 않습니다. 저는 젊은 사람들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그럴 기회를 가지기가 참 어렵습니다. 오늘 이렇게 나와서 못 하던 일을 하니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초청해 주신 데 대해서 다시 한 번 감사 말씀 드립니다.
오늘 일정을 결정하면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습니다. 우리 의전실에서 '안 됩니다.' 하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데 '안 됩니다.' 하는 것을 되게 할려면 한참 싸워야 합니다. 이번에도 약간 싸웠습니다. '대학교가 많은데 하필이면 왜 연세대냐?' 간단합니다. 여러분들은 꾀를 내서 저를 초청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다 알 리가 없지요. 그런 사정을 다 생각하지 않으면 '왜 연세대 갔을까? 대통령이 말을 아껴야 하는데 또 가서……'. 무슨 소리를 할라고……
끝나고 나면 또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모르니까 우리 의전실에서는 신경 씁니다. 우리 경호실에서는 혹시 또 봉변이나 당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걱정도 합니다. 저는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손해 보는 사람 없잖소?' 그지요?
기회가 되면 다른 학교도 가겠습니다. 그런데 항상 기회가 있는 게 아니니까 못 갈지도 모릅니다. 제가 하필이면 탄핵 소추중이라 마음이 느슨하게 풀어져 있는데 초청이 오니까, 항상 그 때처럼 여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시간에…… 좀 마음이 넉넉했던 것이지요. '갑시다'. 리더십센터라는 이름이 근사해요. 좋지 않습니까?
리더십, 얘기는 많은데, 제대로 공부해서 제대로 익혀야 되지 않겠습니까? 저도 거기에 조그만 보탬이라도 되면 좋겠다, 꼭 이번 강연만이 아니라 리더십 연구하는 데에는 저도 앞으로도 협력할 수 있는 데까지 협력을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세대 리더십센터 책임자 여러분, 교수님, 잘해보십시다. 잘 부탁합니다. 또 제 아들, 며느리가 다 연대 출신입니다. 아마 그것도 결심에 약간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습니까? 또 우리 비서실장은 여러분이 잘 아시고요.
여러분들은 참 귀한 인재를, 국가를 위해서 쓰게 그렇게 용납해 주셨습니다. 근데 저도 뭐 보답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총리쯤 되면 몰라도 비서실장, 그런 거 왜 하냐 하는데, 그건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저는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모자라는 많은 것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꼭 여러분의 전 총장님이 필요했습니다. 연대를 위해서는 좀 아쉬운 일일지 모르지만 나라를 위해서 매우 좋은 일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살았는가……. 낱낱이 다 공개가 돼서 여러분들이 모르는 것이 없지요? 없지만,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한 번 말해 봐라.' 이런 뜻이겠지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보신 대로 아시겠지만, 또 제가 생각하는 저의 삶을 오늘 한 번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아마 여러분이 상상하지 못한 것일 겁니다. 성공했지요, 제가?
성공의 비결은 뭔가? 이 비결을 들어보시고, '혼자만 성공하지 말고 우리 나라도 국민도 모두 함께 성공할 방법을 내놓으시오.' 여러분들이 그런 희망을 말해도 좋을 만큼 그야말로 비결을 내놓겠습니다.
과연 대통령은 어떤 나라를 만들기를 원하는가? 그거 혼자서 다 만드는 일은 아니지만, 저도 그것을 소망으로 여러분께 말씀드리면서 '함께 한 번 해보자.' 이렇게 제안드리겠습니다. 멀리 내다보고 멀리 가야 할 우리 나라의 미래가 있겠지만, 당장 이 시기 소위 시대적 과제, 그것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한 번 맞춰봅시다. 여러분과 제가 생각이 맞는지 맞춰봅시다.
그리고 몇 가지 요즘 인기 있는 쟁점들이 있습니다. 모두들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 토론방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논란하고 있는 문제들에 관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도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장래의 계획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제게 주어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제목만 얘기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살았는가?
아마 제가 제일 관심을 가졌던 것은 먹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멋지게 보람 있게 가치 있게 살기 이전에 그냥그냥 삶에 대한 불안이 없이 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첫번째였습니다. 그래서 '먹고 살았다.' 그것이 첫번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크게 고생하지 않고 굶주리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그래서 '행복하다.' 그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마, 시대가 여러분과 좀 달라서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던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에 뭐 했냐? 사랑하고, 아이 낳고…… 지금은요, 손녀가 참 귀엽고 이쁩니다. 뻔하지요. 아무리 이뻐 봤자 고 물씨(?)가 있습니다. 한계가 있지요.
저를 보고 상상을 하십시오. 제 희망은 제보다 예뻤으면 좋겠다……. 그렇습니다. 사랑하고 살았다, 이런 것을 제가 소중하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저는 섭리를 거역하지 않았다, 우리가 추구하는 많은 고상한 가치가 있지만 그 어느 가치보다 저는 섭리에 순응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섭리, 자연의 섭리, 그 섭리를 거역하지 않는 가치관을 가질려고 하고, 또 그것을 존중하면서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이거 깨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옛날에는 단지 산다는 것, 그 이상의 가치를, 뭔가 다른 가치, 하나님이 정해놓은 삶, 그거말고 좀더 내가 개척하는 좀 하나님의 섭리를 거역하면서 사는 그런 삶을 모색해 봤는데, 결국 돌다 돌다 섭리에 거역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런 삶을 삽니다. 혹시 그래서 속물적으로 살았다, 이렇게 말해도 될지 어떻든 그렇게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전했고, 매 시기 승부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그렇게 보면 그럴 것입니다. 끊임없이 여러분은 도전할 것이고, 또 크고 작은 승부를 이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무엇에 도전했는가, 저는 현실, 그리고 현실의 문제에 도전했습니다. 어떤 관념과 주의를 먼저 내세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도전했다기보다는 내 앞에 부닥쳐 있는 문제들에 도전했습니다.
제게 부닥친 문제는 끊임없이 변화했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다닐 때는 진학을 할 형편이 안 될 것 같아서 진학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저의 문제였지요. 고등학교 다닐 때도 취직, 어떻게 부모님을 모실까, 형편이 좀 좋아져서 고시 공부를 하게 됐는데 고시 공부를 하면서는 성공이었습니다. 읍내 아이들한테 자라면서 항상 약간의 열등감을 가지면서 살았던 시골아이여서 아마 성공에 대한 집착이 좀더 강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성공하려고 고시를 했습니다.
보통 대학교에 수석 합격을 하고 나면 '고시에 합격해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변호사가 되겠다. 그러고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되겠다.' 이런 말들을 곧잘 했습니다. 그건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제겐 그런 꿈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냥 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왜? 출세니까…….고시 공부를 하고 있는 동안에 72년 시월 유신이 일어났습니다. 법이 짓밟힌 사건이지요. 아시죠, 시월 유신?
볼 것 없이 여러 가지가 짓밟혔지만, 그 때 제가 보는 관점에서는 법이 짓밟히는 그런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유신 헌법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판사가 됐습니다. 유신 헌법 공부하고, 고시 합격해서 판사가 됐으니까 '유신 판사' 아닌가……? 그렇게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 부모는 옛날에 창씨 개명을 했습디다. 그래서 항상 '친일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고심을 했습니다. 지금도 이 문제는 우리의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전후에 민족을 배반한 사람들을 숙청했는데, 그 때 숙청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이냐가 아마 굉장히 어려운 사회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가 숙청이냐, 숙청의 등급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공직에 취임하지 못하게 하는 정도로 할 것인가, 고위 공직에 취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그 사회에서 명망 있는 지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할까, 또는 감옥에 보내야 할까, 이런 많은 등급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이 거기의 어느 등급에 해당이 돼야 되는가…….
우리도 지금 친일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을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만, 이 문제는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될 문제고 오늘 답을 내놓지 못하겠습니다만,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될 문제입니다. 과거에 떳떳치 못했던 모든 사람이 숙청이 되면 저도 숙청 대상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숙청 안 될 사람 숫자가 얼마나 될랑가, 그것도 좀 걱정이긴 합니다. 이런 어려운 문제를 하나 던지고 넘어가겠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현실의 문제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드린 말씀이 전부 나의 문제였습니다. 나의 문제였는데, 나로부터 조금 그 벗어난 때가 변호사 시절입니다. 열심히 나를 위해서 돈벌이를 했습니다만, '변호사 비리를 한 번 해소해보자. 변호사 비리를 한 번, 해보자.' 그렇게 해서 이런저런 노력을 하기도 했습니다.
법원과 검찰의 권위주의, 변호사가 내 가서 할 말도 못 하고 고개 숙이고 손만 비비는 변호사, 이 문화를 바꿔 보자는 도전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몇몇 재판부에서는 제가 찍힌 변호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로써 혹시 내 당사자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았는가 하는 그런 불안이 있었던…….
시국 사건 변론을 했습니다. 아마 자기만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내지 젊은 사람들을 만나서 받은 충격, 자존심, 정의감, 이런 것들이 좀은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제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계산을 해 보니까 8년 뒤에는 대학교를 가게 생겼는데, 바로 80년대 그 초반, 그 시기에는 대학교에 가서 배우면 자유·정의·민주주의를 배우게 돼 있고, 민주주의를 배우면 배운 것과 다른 현실에 반감을 갖지 않을 수 없고, 그러면 반드시 데모를 할 것 같애요.
데모를 하면 이름이 적히고 평생 취직이 안 돼요. 죽도록 맞아요. 뻑하면 끌려가 가지고 맞고, 물론 저도 제 뒤에 이제 형사가 두세 사람 따라다니는 수준의 이제 사람이 됐습니다만, 아이가 그 꼴을 당한다고 생각하니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아이들한테는 어떻게 이런 세상을 살지 않게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감옥 가는 수밖에 없겠다, 그래서 그만 문제의 변호사가 됐습니다. 제법 괜찮지요? 사람…… 그 제가 눈…… 뭐랄까 사회 문제에 눈을 떠온 과정을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랫동안 도전하고 오랫동안 승부를 해 왔습니다만, 가장 어려웠던 승부는 자신과의 승부였습니다. 긴 설명 드리지 않아도 여러분 다 짐작하실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적은, 가장 어려운 상대는 제 마음 속에 있습니다. 저의 이기심 안에 있고, 저의 비겁함 안에 있고, 저의 안일함 안에 있고 그렇습니다. 제 안에 있습니다.
어떻든 그럭저럭 여기까지 왔습니다. 성공의 비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제가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대통령이 아니라도 저는 만족합니다. 어떻게 해서 성공했을까, 제가 성공한 비결…… 확실하게 투자하라는 겁니다. 가진 것은 그대로 가지고 그리고 더 가지겠다는 도전, 이것은 좀 안전하긴 하지만 성공하는 덴 큰 도움이 되지를 않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승부를 걸어야 되는 성공의 과정에서는 투자를 할려거든 확실히 하라, 저는 제 인생을 걸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해 왔습니다. 성공보다는 당면한 문제에 몰두했습니다. 현재에 몰두했습니다. 매 시기 현재에 몰두했습니다. 멀리 내다보긴 하지만, 그것은 내다볼 뿐이지 항상 현재에 전부를 투자했습니다. 지나고 나서 제가 대통령 후보가 되고, 제가 대통령이 될 건지 안 될 건지…… 아니, 후보가 되기 전에 경선 후보가 됐을 때 대통령이 될 건지 안 될 건지 점을 쳐보고 제가 될 거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왜냐 하면 후보…… 대통령 되겠다고 그 시기까지 나온 사람 중에서는 제가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했습니다. 가장 확실하게 투자했다는 것이지요. 좋은 일은 아닙니다만, 좋은 방향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돌이켜 가만히 역대 대통령들을 보니까 다 죽다가 살아난 사람들이에요. 그렇지요? 저 앞에 대통령이 되신 분들은 이런 이유로든 저런 이유로든 다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입니다.
이승만 대통령, 그렇지요? 박정희 대통령, 저는 결코 찬성할 수 없습니다만, 그러나 어떻든 한강을 건널 때 그는 목숨을 걸고 건넜지 않겠습니까? 목숨을 걸었습니다. 전두환·노태우…… 어떻든 쿠데타는……. 쿠데타는 실패하면 죽는 겁니다. 어, 죽는 겁니다. 공짜로 하는 거 아닙니다. 찬성할 수 없는 일이지만, 결코 그분들은 공짜로 하지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김대중 대통령 다들 돌아가실 뻔했습니다.
저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세상이 좋아진 거지요. 그래서 다행히 목숨을 걸지 않고 대통령이 된 첫번째 대통령입니다, 제가. 그렇지요? 뭐 그래서 국민들한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밑천을 들인 것을 보면 그래도 제가 제일 화끈하게 투자를 했더라고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똑똑하게 못할 바에는, 제대로 못할 바에는 정치 안 한다, 이런 결심을 가지고 했습니다.
두번째 성공의 비결은 끊임없이 저는 변화해 왔습니다. 그렇게 자부합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변호사를 할 때 이미 세상을 알고, 역사를 알고,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니고, 그저 저 잘 먹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마는, 끊임없이 자신의 목표를 바꾸고, 어떻든 부닥친 문제를 풀기 위해서 사람이 바뀌어 왔다…… 길게 설명할려면 참 많겠는데…….
저는 그렇게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바뀌는 방향으로 동참하면서 저를 바꾸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변화를 항상 수용해 왔습니다. 그를 위해서 저는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세번째 비결은 공부입니다.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지금도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네번째는 사주가 제법 괜찮답니다. 시운입니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하는데요, 어떻든 그렇게 가다 보니까 시대가 요구하는 것과 상징적으로 비슷하게 아마 보였나 봅니다. 그러니까 '너, 대통령 한 번 하라.' 이렇게 시켜 준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나라를 원하는가? 여러분들은 아마 잘 모르시겠지만 저희는 공을 들여서 인수위 시절에 국정 목표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 발전 사회' 고만 '균형 사회'면 되는데 '발전'을 자꾸 넣자고 해서 넣었습니다. '더불어 사는 균형 사회', 그 다음에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
뭔가 섭섭하지요? 하나, '넉넉한 나라', '활력 있고 넉넉한 나라'야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래야 더불어 살기도 하고, 질높은 삶도 또 품위 있고 문화적인 삶도 다함께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부자 나라' 넣어야 되는데, 네 개를 할려니까 좀 너무 많아서 외우기 어렵겠다…… 그래서 '균형 발전'에도 '발전'이 들어 있고, '평화와 번영'에도 '번영'이 들어 있으니까 그걸로 그냥 잘사는 나라는 해소하자, 이렇게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어떻든 전달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그걸 '1. 활력 있고 넉넉한 나라', 이렇게 한 번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면 먹고…… 제가 그랬듯이 많은 국민들은 당장 먹고 사는 것이 제일 큰 건데, 1번으로 그거 넣어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국정 목표 세 개 그 위에다가 그냥 그걸 넣을랍니다. '활력 있고 넉넉한 나라', '넉넉하고 활력 있는 나라', 이래서 네 개로 넣을려고 합니다.
이런 나라가 어떤 나라냐? 그런 나라가 되기 위해서 정부는 어떤 정부가 돼야 되느냐? 참여 정부가 돼야 된다, 정부가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이 참여하는 정부다, 뭐 이런 뜻이겠지요. 그것만 할려고 하니까 한나라당하고 너무 닮았어요. 국정 목표가 똑같애.
그래서 '차별화하자. 방향은 같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다르고 가는 길이 다르다. 전략이 다르다. 그러므로 전략을 말하자'. 전략은 '1. 원칙과 신뢰', '2. 투명과 공정', '3. 대화와 타협', '4. 분권과 자율', 이러면 이제 한나라당하고 다르지요?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원칙과 신뢰'가 꼭 같이 가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여덟 개나 해 놓으면 또 공부 잘하는 사람은 외우지만, 요새는 암기식 좋아하지 않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외우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네 개로 뭉치자', 비슷비슷한 것끼리 원칙이 바로 서서 그 원칙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해서 맞추어서…… 그렇습니다. 참 좋은 얘기입니다. 그리고 조금은 맞습니다.
예를 들면 '분권과 자율'이라든지 '대화와 타협'이라든지 '투명과 공정'이라든지, 이런 것은 제가 오랫동안, 대통령 꿈꾸기도 훨씬 전부터 얘기해 오던 것이었기 때문에, 이건 제가 특허는 안 냈지만 아무나 쓰면 안 됩니다. 하나 더 보탠다면 희망과 낙관이 있는 나라, 낙관적 희망이 지배하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들어 있지만 신뢰는 한번 더 말했습니다. 신뢰가 있는 나라가 되어야 됩니다.
신뢰가 먼저냐 민주주의가 먼저냐, 신뢰가 먼저입니다. 인간이 경험한 많은 사회 중에는 전제 군주 사회도 있고 귀족 사회도 있고 무슨 독재 사회도 있고 파시스트 사회도 있고 다 있습니다. 그 모든 사회에서 다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입니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상대방이 나와 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별의별 장치를 다해야 됩니다. 상대방이 선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선의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없으면 속지 않기 위해서 준비해야 되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변호사를 하는데, 계약을 맺을 때 상대방이 위약할 경우에 대비해서 이렇게 위약하면 이렇게 방어하고 이렇게 위약하면 이렇게 방어할 수 있는 모든 조항들을 집어넣는데, 계약서 하나 만드는 데 보름, 한 달씩 걸립니다. 변호사 비용이 엄청 나가죠.
국가가 나의 안전을 지켜 주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불안이 있을 때 개인 경호 시스템을 하죠. 남아프리카 같은 나라가 지금 경찰보다 개인 경비 용역업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있고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돈 없는 사람은 어찌 하란 말이냐 하는 질문이 바로 나올 수 있죠.
믿음이 없는 나라, 정말 희망만을 얘기해야 되는데 이것이 제 희망인데, 그러나 믿음에 관해서는 몇 마디를 보태겠습니다. 이 믿음을 바로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말한 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생깁니다.
선의를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말한 내용을 말 비슷하게 하긴 하는데 또 다르게 해석해 가지고 그 본뜻을 어떻게든 왜곡시켜 보려는 노력…… 선의가 없이 맺은 계약은 그 방향으로 갑니다. 그렇죠? 그래서는 안 됩니다. 진실해야 됩니다. 진실하게 말하고 진실하게 이행해야 합니다. 사회의 신뢰를 세우는 방법입니다.
이 신뢰 중에 중요한 것 하나는 그 사회의 지도적 인사들의 행동입니다. 지도적인 인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말과 행동을 달리하게 됐을 때 그 때 그 사회의 신뢰가 붕괴됩니다. 지도자는 그야말로 말대로 실천해야 됩니다. 그리고 지도자는 진실을 말해야 됩니다. 그러면서 아울러서 지도자는 말할 자격을 갖춰야 됩니다. 말할 자격 없는 사람이 좋은 말을 자꾸 하면 좋은 말을 버립니다.
민주주의, 한국적 민주주의, 들어보셨습니까? '한국적 민주주의'란 이름을 붙여서 민주주의를 완전히 말살시켜 놓고 민주주의 한다고 입만 열면 '민주주의' 하니까 사람들이 믿지 않은 때가 된 거죠. 그 후유증이 엄청납니다. 물론 그 때도 공정한 사회를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일일이 다 얘기하기가 어렵네요, 시간이. '정의로운 사회', 기억나십니까? 80년 전두환 대통령이 내걸었던 '정의로운 사회'. 절대로 보통 사람일 수 없는 분이 '보통 사람'이라고 얘기를 해요. 오늘 참…… 이 강연이라는 것이 위험한 곳이죠.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이렇게 비방한 결과가 될 것 같네요. 어쨌든 존재했던 사실입니다. 사실인데, 그렇습니다, 신뢰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거죠. 이 시대에서 가장 큰 문제로 생각하는 것이 뭐냐, 저는 분열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앞으로 제대로 가려면 뭘 해야 하냐, 분열을 극복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조선이 무너졌습니다. 힘이 없어서 무너졌죠. 그러나 그러면서도 가장 처참하게 무너진 것은 분열하고 무너진 것입니다. 지도층의 분열과 더불어서 무너진 것입니다. 그 이전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한국에 있어서 분열은 각별합니다.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살았던 시대가 너무 오래됐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고 공존하려고 해도 그 공존의 범위를 벗어나는, 그 대립이 있을 때에는 공존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일제 시대, '친일하고 살자', '일본이 시키는 대로 하고 살자'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닙니다. 친일과 항일은 공존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죠.
해방이 되고 난 뒤에 소위 용공·반공해서 좌익·우익 해 가지고 실제에 있어서 어떻든 결코 서로를 용납하지 않는 대결의 시대를 지내 왔습니다. 그 다음에 독재·반독재, 아무리 민주주의 한다 하지만 독재와 어떻게 타협을 할 수 있겠습니까? 독재적 방법과 타협할 수 없는 것이죠. 저항이 있을 뿐이죠. 그래서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상대주의에 한계라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원리를 부정하는 사상과 행동이죠. 그래서 저항권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물론 개별 국민들은 민주주의 제도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공격할 자유가 폭넓게 인정되지만 적어도 국가 권력은 그래서는 안 된다…… 자유의 폭이 다릅니다. 민주주의에 대해서 비판할 수 있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일반 국민 개인에 한한 것이지 국가 권력은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적어도 국가 권력을 추구하는 정도의 조직적 집단이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 법질서는 결코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양심의 자유가 이미 아닙니다.
그런데 독재·반독재, 그렇게 싸웠죠. 지금도 그 연장선 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죠? 어떻게 극복할 거냐.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만들어야죠. 이제 민주주의는 어떻든 서로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으로써 합의를 만들어 나가고 적어도 논리적으로 합의가 되지 않더라도 절충을 해서 타협을 합니다. 타협으로라도 합의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런 것이 우리 시대에서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왜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느냐 하면, 그 동안 우리 사회의 권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지배적인 힘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그들을 반대하는 사람들, 그들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배제했죠. 그죠? 말하지 못하게 하고, 말하면 잡아 가두고, 또 잡아 넣기 위해서 때리고, 심하면 죽이고, 그랬죠. 배제의 시대를 우리가 수십 년간 살아 왔던 것입니다.
그 배제의 시대에 싹튼 저항의 논리가 또한 비타협 저항입니다. 비타협 투쟁 노선입니다. 지금도 학생 운동의 일부에 그 노선이 살아 남아 있죠? 그런데 문제 해결이 안 돼요. 한국은 이제 대화와 타협의,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 갈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이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야가 죽기살기로 싸우지 않더라도 실적에 따라서 4년 뒤에 다시 심판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당장에도 견제와 균형이 있지만 복수 정당이라는 것은 당장의 견제와 균형도 중요하지만 4년 뒤에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제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 갈 수 있는 조건을 우리가 갖추었다…….
좀 엉뚱한 얘깁니다마는, 조폭 문화를 청산해야 됩니다. 조폭 문화가, 아시죠? 조폭 문화를 청산해야 됩니다. 조폭 문화는 자기들끼리는 칼 같은 법을 세워 놓고 있습니다. 그렇죠? 칼 같은 규율을 세워 놓고 있고, 외부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법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그렇죠, 그렇죠. 칼 들고 나오고, 페어플레이라는 것도 없고, 무조건 그냥 아주 비겁하게 비열한 수단을 동원해 가면서라도 공격하고 전혀 룰을 인정하지 않는……
내부적으로는 강력한 룰을 만들어 놓고 있죠. 그 사이에서는 철저히 충성과 보상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렇죠? 충성과 보상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것이 조폭 문화입니다. 그 조직에 들어있는 한 특별한 대우를 받고 특별한 대우를 합니다.
그래서 아주 폐쇄적인 특권적 집단이 되는 것이죠. 이것이 과거 군국주의 군대에도 살아 있었고, 정치 권력에도 이런 논리가 통했던 때가 있죠. 보편적 지지가 없으니까, 보편적으로 승인된 가치를 부정하니까, 많은 사람들의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고, 저항이 있으니까 더욱더 강고하게 그것을 제압해야 되고, 그러니까 거기에 주거니 받거니 하는 그 관계를 주종 관계를 맺고 거기에 물질적인 명예적인 보상들을 주면서 갈라먹기 하고, 그렇게 해서 외부 세계의 보편적 법질서를 유린하는 이런 것을 조폭의 질서라고 말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렇죠? 이게 우리 지난날의 우리의 정치였습니다. 잔재가 남아 있다는 것이죠, 잔재가.
제가…… 정경 유착 끊읍시다. 그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그 사이에 불합리한 부당한 거래가 이루어진다, 일반 국민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죠. 권언 유착도 끊읍시다. 권언 유착은 끊긴 것 같은데, 정언 유착은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죠? 그 유착에는 항상 부당한 이익이 발생하고 부당한 특권이 발생합니다. 아직 정부 안에 있는 권력 기관에도 이 사고의 잔재가 남아 있는 부분들이 없지 않습니다.
참여 정부가 끝날 때는 다 없어질 겁니다. 정부 안에 것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정경 유착도 높은 수준의 것은 제가 다 정리를 하겠습니다. 청소를 하겠습니다. 권언 유착도 제가 정리를 해 놓겠습니다. 정언 유착은 국민들이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권적 문화, 즉 조폭 문화를 청산하자. 대안적 운동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민주주의 권력은 끊임없이 견제 받아야 합니다. 감시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많이 흔들어 버리면 감사받는다고 일을 못 합니다. 공무원들이 감사 때문에 일을 못 하겠다고 하는데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권도 밤낮 없이 감사만 하고 계속 흔들면 갈길 못 가죠.
그래서 이제 비판과 더불어서, 비판은 적절해야 하고 합리적 근거를 가져야 하고 그 다음에는 대안이 있어야 합니다. 대안 없이 하는 비판 운동은 그 사회 효율을 현저히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적 대안 운동, 이것이 참여의 한 형태로서 새롭게 좀 자라났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지금 이 시대의 과제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논란되는 문제들에 관해서…… 짧게 한다고 했는데 길어버렸네요. 질문에서도 나오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진보와 보수 얘기를 많이 합니다. 내용을 얘기하기 이전에 진보를 맨 왼쪽에 놓고 한 줄로 세우고, 보수를 맨 오른쪽에 놓고 한 줄을 쫙 세우면, 그렇습니다.
한국은 좌측으로 한참 달려가면 일본이 보일 겁니다. 일본을 지나서 또 왼쪽으로 한참 달려가면 미국의 사회 제도가 있을 것입니다. 거기서 죽자 사자 또 뛰어가면 저쪽에서 오른쪽으로 막 달려오고 있는 영국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무슨 진보가 어떻고 보수가 어떻고 좌파가 어떻고 한심하다, 이거죠. 우리 나라의 복지 예산, 그 다음에 세금과 재정의 재분배 효과, 이런 등등을 해 보면요, 한심합니다. 일반적 복지도 중요하지만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라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뻑하면 진보, 진보는 좌파고 좌파는 빨갱이다, 이렇게 몰아붙이는 것은 한국의 그야말로 한국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암적인 존재입니다.
그렇게 진보와 보수로 나뉘는데, 그럼 진보는 뭐냐, 보수는 뭐냐 대개 보수는 이렇게 보면 됩니다. 보수는 힘 센 사람이 좀 마음대로 하자,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에게 거의 모든 보상을 주자는 것입니다. 적자 생존의 원리를 철저하게 적용하자, 약육강식, 그것이 우주의 섭리 아니냐, 그렇게 말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진보는 뭐냐. 더불어 살자, 인간은 어차피 사회를 이루어 살도록 만들어 있지 않냐, 사회를 이루어 사는 한 혼자 남을 지배하면서, 그 연대죠. 연대, 더불어 살자, 이런 얘깁니다. 그러나 어느 쪽도 극단적인 한 쪽의 것은 없지만 크게 봐서 이렇습니다, 크게 봐서. 그 다음에 가급적이면 바꾸지 말자, 이게 보숩니다. 뭘 좀 바꾸자, 고쳐가면서 살자, 진보죠.
그래서 한때 소련이 붕괴되었을 때 진보와 보수가 바뀌어버렸습니다. 그렇죠? 그건 이미 소련 사회가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 사회로서 또 다른 시장의 특권이, 시장에서 승리한 사람의 특권이 아니라 시장은 죽여 버리고 권력의 장에서 모든 경제를 움직이면서 거기서 승자들이 특권을 형성해 버렸기 때문에, 부득이 거기에는 보수가 공산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개가 서로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만, 자본주의 사회에 있는 한 대개 보수는 적자생존론에 근거하고 있고, 양육강식론에 근거하고 있고, 아울러 되도록이면 바꾸지 말자, 특히 한국처럼 아주 오른쪽에 있는 나라에서는 더욱더 바꾸지 말자, 기득권의 향수가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이해하시면 간명하죠. 복잡하지 않습니다. 복잡하게 이야기할 것 뭐 있어? 보수,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놈의 보수를 다 갖다 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 이겁니다.
성장과 분배는 반드시 배치되는 개념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스티글리츠 교수의 말씀에 의하면, 성장과 분배는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고 같이 안 가면 둘 다 망한다, 같이 가야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경제위기론, 여러분들이 취직 걱정이 많으니까 경제위기론이 실감이 나죠. 실감이 나는데 이 문제는 그래프를 하나하나 갖다 놓고 보십시오. 우리의 GDP 3.8% 성장했던 2001년이 우리 나라의 경제가 그 날로 붕괴하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살았습니다. 실제로 그 분위기 때문에 경제가 더 살아나지 못하고 침체했다는 강력한 학설이 있습니다.
경제위기론은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많은 지표들을 가지고 보고 있는데, 위기는 언제든지 올 수 있는 것이지만 지금 잘 관리하고 있으므로 제가 있는 동안은 문제 없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청년들 일자리는 어쩌란 말이냐. 네,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죽을동 살동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대학을 많이 가요. 전부 대학 다 가 가지고 전부 높은 자리만 할려고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우리 산업 구조는 빨리 바뀌고 있고요. 그래서 지식 서비스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위해서 대통령이 직접 진두 지휘하고 있습니다. 효과가 언제 날거냐? 좀 걸립니다.
아일랜드가 소위 노사 합의를 하고 성과가 나고 할 때까지, 87년에 노·사·정 합의를 하고 그 때부터 외자 유치라든지 이런 새로운 경제 정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고용이 살아나고 해서 경제가 살았다 하고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때까지 6년이 걸렸습니다. 93년이었습니다.
우리는 93년도에 '신경제 100일'을 했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까 '신경제 100일'로 좋아진 건 하나도 없습니다. 죽는다 죽는다 엄살을 자꾸 부리면 국민들이 그런 줄 알고 불안해하고, 정부는 급하니까 이 정책 저 정책 막 갖다 쏟아 붓고 그리고 경제 파탄과 같은 상황이 오는 일이 있습니다. 89년의 위기론에서 90년의 진짜 위기가 왔고, 2001년의 위기론에서 무리한 경제 정책이 나오고 2002년에 위기가 진짜 와 버린 것입니다. 한번 곰곰이 한번 자료를 찾아 보십시오. 아주 위험합니다.
그래서 누가 경제 위기를 가지고 어떻게 불안을 조성하더라도 저와 우리 경제팀들이 정말 면밀히 검토하고 면밀히 따져서 철저히 분석해서 흔들림 없이 의연하게 가겠습니다. 그 동안에 욕은 제가 먹으면서 가겠습니다. 일자리는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시간이 많이 됐는데, 상생에 관해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좋은 겁니다.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바로 상생입니다. 상생인데 상생은 그야말로 진실하게 이것을 실천할 의지가 있어야 됩니다. 상대방에게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서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서 상생을 내세우면 그 상생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상생인지를 알아야 됩니다. 세상이 변화할 때는 변화를 수용할 줄 알아야 하고 기득권을 버려야 할 때는 기득권을 버려야 합니다. 새로운 문화를 장려해야 될 때 낡은 문화를 고집하면 안 됩니다. 시대의 흐름도 맞추어야 하고요.
그 다음에 상생을 하는 기본 조건을 갖춰야 됩니다. 상대를 존중할 줄 알아야 됩니다. 배제의 습관이 남아 가지고, 지금도 계속 배제할려고 하는 방법으로는 상생할 수 없습니다. 상생은 결국 대화·토론·설득·타협, 그리고 얼추 다 합의가 된 것 같은데 마지막 꼭지가 안 따질 때 그 때 표결하는 겁니다. 그렇죠? 표결하고 승복하는 겁니다. 승복해야 상생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 규칙을 무시하면 상생이 안 되죠.
상생은 커녕 스포츠 게임도 안 되는 거죠. 규칙을 잘 지킨 스포츠가 끝났을 때, 게임이 끝났을 때 두 사람이 서로 악수하고, 그죠? 반칙으로 얼룩진 운동이 끝나거나 시합이 반칙으로 얼룩지면 끝나고 나서 무슨 상생이 되겠습니까? 규칙과 ……. 승복, 훌륭한 심판, 매우 중요합니다.
희망이 뭐냐. 패배를 넉넉하게 수용할 줄 아는 그런 역량을 갖추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만, 어떻든 권력을 추구한 사람으로서는 이제 하산 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하산을 무사히 발 삐지 않고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등산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 갈 때가 더 위험하다고 합디다. 무사하게 하산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상의 경치에 대해서 미련을 갖지 않아야 합니다.
정상의 경치가 저에게는 좋기도 하지만 골치 아픈 일도 많습니다. 미련을 갖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자기와의 승부 속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제 자신이 여유 있는 마음으로 하산할 수 있도록 자신을 다스려 내는 것, 그것이 제가 해야 될 남은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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